출처: 연합뉴스 유해진 집 앞까지 몰려가
영화 ‘암살자’가 여러 가지 이유로 영화관 밖에서 상반된 의견으로 논란이 되면서 유명해지고 있다. 영화는 사실을 바탕으로 가공한 이야기이지만, 그 이야기가 역사적 사실에 바탕을 두다 보니 감정이 개입된 사람들로 논란이 뜨겁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 하나 있다. 영화에 출연한 배우에게 일부 사람이 자신의 감정을 쏟아내며, 그 배우의 집 앞에서 농성하고 있다고 한다. 영화 내용에 대한 의견을 표하는 것까지는 이해하지만, 왜 출연 배우의 집 앞에까지 가서 농성하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면서 오래전부터 생각한 것이 떠올라 간단하게 정리해보려 한다. 한국은 정치권에서 무언가 일이 터질만하면 연예인 문제를 터뜨려 관심을 전환하고는 했다.
가장 가깝게 일어난 사건으로는 배우 이선균 사망이 있다. 2023년은 새만금 잼버리 대회의 처참한 실패와 양평 고속도로 특혜 논란이 뜨거웠다. 그 해 배우 이선균은 세상의 지탄받으며 몹쓸 사람이 되었다. 견디지 못하고 배우는 세상은 떠나고, 그가 억울하다는 것은 사후에 알려졌다.
그때 배우 이선균이 양평 고속도로 문제를 일으키고 새만금 잼버리 대회를 엉망으로 기획한 사람보다 더 비난받아야 하는지 궁금했다. 언론과 여론은 그를 궁지로 몰아 자살에 이르게 했다. 그러나 언론과 여론은 일련의 사건에 대해서는 그 정도 강도로 비난하지 않았다.
이런 일이 필자가 뉴스를 보기 시작한 이후로 끊임없이 일어난 일이라 놀랍지는 않다. 그러나 왜 사람들은 쉽게 연예인에게 도를 넘은 비난하는지 생각하고는 했다. 개인적 의견으로는 왕조나 독재 시절에 가진 생각이 남아 있는 게 아닌지 가설을 세워보았다.
영화 ‘왕의 남자’를 보면, 왕이 ‘공길’이라는 광대를 좋아한다. 광대가 하는 공연을 좋아하는 것을 넘어서 개인적 감정까지 가지게 된다. 자유롭게 돌아다녀야 할 광대를 자기가 머무르는 궁에 붙잡아 두려 한다. 자기 의지대로 광대를 좌지우지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장면이 영화에 보면 나온다.
광대는 어떤 의미에서 현대의 예술가라 할 수 있다. 공길이와 같은 광대는 남을 즐겁게 해주는 재주인 연기나 재담 등을 가지고 공연한다. 이런 재주를 가지기까지 무수한 훈련과 연습의 시간을 가지고, 무대에 오른 뒤에도 계속 좋은 공연을 하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한다.
이런 재주를 가지고 하는 공연을 왕이나 독재자는 자기 기준에 따라 판단을 내린다. 자기 기준에 부합하면 좋은 것이고, 아니면 나쁜 것으로 여겨 심할 때는 목숨에 위협을 가하기도 한다.
왕이나 독재자 마음에 들었던 예술가의 삶이 평탄한 것만도 아닌 것 같다. 자유롭게 창작해야 할 예술가가 독재자가 만든 틀 안에서 공연하게 되고, 자신의 의지가 아닌 남의 의지로 움직이게 된다. 창의성은 자유로운 생각에서 시작되는 것이고, 그래서 예술은 다양성이 존재하는 것이다.
해방 후 한국은 이런 왕정 시절과 별반 다르지 않은 생각을 가진 자들이 정부를 만들고 기득권이 된 것 같다.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고 나서야,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않는다.'는 말이 나오며 예술의 자유를 인정했던 것 같다.

독립기념관에 전시된 백범 김구 조각상
그러나 이보다 훨씬 전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들은 예술에 대해 훨씬 더 잘 이해했던 것 같다. 가장 유명한 말은 독립운동가 김구 선생님의 ‘문화 강국’일 것이다. ‘백범일지’ 중 ‘내가 원하는 나라’에 보면 다음과 같은 글귀가 나온다.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을 원치 아니한다. 우리의 부력(富力)은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강력(强力)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기 때문이다.
— 김구 선생님의 백범일지 내가 원하는 우리나라 편 중에서-
1947년에 이 글이 쓰였으나 80여 년이 지난 지금 읽어도 맞는 말이다. 이런 생각을 가진 독립운동가들이 해방 후 한국 정부를 만들었으면 한국 문화가 어떤 식으로 발전했을지 늘 궁금하다.
지금이라도 우리나라 문화가 세계로 뻗어가고 있어 다행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케이팝 데몬 헌터스를 만든 것은 한국이 아니다. 캐나다에 살고 있는 한국계 영화감독이 만든 영화이다. 한국에 살았다면 그런 영화를 만들었을지 생각해 볼 지점이 있다.
역사에는 가정이 없다고 하지만, 그래도 필자는 생각해 본다. 이선균과 같은 안타까운 연예인의 죽음이 발생하지 않았으리라 생각한다. 그리고 나도향의 ‘뽕’처럼 원작 소설의 비참한 내용과 상관 없이 에로 영화로 만들어 버린 영화 작품도 없었으리라 생각한다. 그리스·로마 신화 대신 우리의 신화를 한국인이 더 많이 알고 영화 웹툰 등 다양한 형식으로 구현했을 수도 있다. 뽕짝 대신 우리 국악이 다양하게 활성화되었을 수도 있다.
그랬으면 우리는 한민족이 얼이 살아 있는 우리말이 살아 있는 그런 문화강국에 이미 살았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