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쌍한 고라니
새벽녘에 잠이 깨 문밖을 나가보니
텃밭에서 파란 불빛들이 아롱대다가
다롱이가 하품하며 내게 다가오자
고라니 몇 마리가 사방으로 내 튀는데
하필이면 한 놈은 앞집 마당으로 왔네
다롱이는 쏜살같이 앞으로 달려가고
앞집 개도 덤벼들자 들리는 비명 소리
얼마 후 두 마리의 개들은 씩씩거리며
쓰러진 고라니를 내 앞으로 끌고 오네
눈도 못 감고 숨을 몰아쉬는 불쌍한 놈
온몸을 물어뜯겨 피투성이가 된 고라니
앞집 개는 옆에서 고라니를 지키고
다롱이는 꼬리치며 나를 뱅뱅 도는데
아마 자기들을 칭찬해 달라는 거겠지
그래 수고들 했다 목덜미를 쓰다듬으며
날이 밝으면 저 불쌍한 고라니는
뒷산의 양지쪽에 잘 묻어 줘야지

[이장영]
시인
칼럼니스트
일어통역사
부동산개발 대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