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담일보=박주민기자]

국내 주요 은행의 기업예금이 1,000조 원을 넘어선 가운데 반도체 산업의 호황에 따른 대기업 자금 증가가 은행권의 자금 운용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기업예금 확대는 은행의 수신 기반을 늘리는 요인이지만, 대규모 자금의 빈번한 이동은 유동성 관리와 자금 운용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지난 4일 매일경제가 보도한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집계에 따르면 올해 10월 말 기업예금 잔액은 요구불예금을 포함해 1,093조 원을 기록했다. 올해 들어 103조5,000억 원 증가한 규모다. 반면 같은 기간 개인예금은 30조6,000억 원 감소해 기업과 개인의 예금 흐름이 대조적인 모습을 보였다.
기업예금 증가의 배경 중 하나로는 반도체 산업의 실적 개선이 거론된다. 인공지능(AI) 관련 수요 확대와 반도체 업황 변화에 따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주요 기업의 현금 창출 능력이 금융권의 관심을 받고 있다.
기업이 영업활동으로 확보한 현금을 설비투자나 연구개발 등에 즉시 사용하지 않을 경우 은행 예금이나 단기 금융상품 등에 일시적으로 보관할 수 있다. 다만 기업의 현금 보유액이 증가했다고 해서 그 자금이 모두 은행예금으로 유입되는 것은 아니다. 실제 반도체 기업의 자금이 기업예금 증가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별도 확인이 필요하다.
은행 입장에서는 기업예금 증가가 반드시 수익성 개선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은행은 예금으로 조달한 자금을 대출이나 유가증권 등에 운용해 수익을 얻는다. 그러나 대규모 예금이 단기간에 유입되면 해당 자금을 적절한 수익률과 위험 수준으로 운용할 수 있는지가 중요해진다.
특히 대기업은 자금 규모가 크고 여러 금융기관의 예금금리를 비교해 거래처를 변경할 수 있어 은행 간 수신 경쟁에도 영향을 미친다. 높은 금리를 제공해 예금을 확보하더라도 운용수익이 이를 충분히 웃돌지 못하면 은행의 이자이익이 줄어들 수 있다.
대규모 기업예금의 이동은 은행의 유동성 관리에도 영향을 준다. 기업이 투자나 결제 등의 목적으로 거액을 인출하면 은행은 감소한 예금을 다른 수신이나 자금 조달을 통해 보완해야 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예대율 등 주요 건전성·유동성 관리 지표를 함께 고려해야 한다.
예대율은 은행의 예금 대비 대출금 비율을 나타내는 지표로, 예금이 감소하고 대출 규모가 유지되면 비율이 상승할 수 있다. 따라서 은행은 예금 잔액의 증가뿐 아니라 자금의 안정성과 인출 가능성도 함께 살펴야 한다.
기업의 자금 운용 결정은 은행을 넘어 채권시장과도 연결된다. 대기업이 보유 현금을 예금, 채권 등 금융상품에 배분하거나 설비투자에 사용하면 금융시장에 공급되는 자금의 규모와 흐름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개별 기업의 투자 결정이 채권금리에 미치는 영향은 당시 시장 여건과 자금 이동 규모에 따라 달라진다.
이번 기업예금 증가세는 은행권에 수신 규모 확대와 안정적인 자금 관리라는 두 가지 과제를 동시에 보여준다. 기업예금이 얼마나 늘어나는지뿐 아니라 어떤 기업의 자금이 얼마나 오래 머무르는지, 은행이 이를 어떤 방식으로 운용하는지가 중요한 관리 요소가 될 것으로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