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세계는 아버지의 집이었다. 그러나 그 세계는 너무도 좁아서, 실은 부모님 두 분만이 전부인 세계였다. 나는 그 세계를 거의 다 알고 있었다. 그 세계의 이름은 어머니와 아버지였고, 사랑과 엄격함이었으며, 삶의 본보기와 배움이었다.
그러나 또 하나의 세계는 이미 우리 집 한복판에서부터 시작되고 있었다. 그 세계는 전혀 다른 세계였다. 냄새도 달랐고, 말도 달랐으며, 약속하는 것도, 요구하는 것도 모두 달랐다.
- -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에서
채소밭에서 일하다 읍내를 바라보면, 성(城)이었다. 경찰서 건물이 망루같이 보였다. 항상 성곽에는 아지랑이가 서려 있었다.
읍내에 있는 초등학교에 들어가며, 나는 물 위의 기름처럼 겉돌았다. 책가방을 메고, 운동화를 신은 희멀건 읍내 아이들은 내게 가까이할 수 없는 성역(聖域)이었다.
그 아이들 곁으로 가게 된 건, 6학년 때였다. 6학년이 되자 오후에는 전교 석차별로 반 편성을 다시 했다. 읍내 중학교 1학년 정원이 초등학교 6학년 학생들보다 더 적어, 초등학교별로 경쟁이 치열했다.
나는 다행히 성적이 좋게 나와, 가장 우수한 분단에 배치되었다. 향긋한 읍내 여학생이 옆에 앉았다. 읍내 아이들과 어울리게 되면서, 나는 새까만 동네 아이들과는 차츰 멀어지게 되었다.
그 후 함께 어울려 놀던 작은 시골 마을은 내 깊은 가슴 속에 아련하게 남아 있게 되었다.
싱클레어는 아버지의 집을 벗어나, ‘또 하나의 세계’에서 성장했듯이 나도 고향 마을을 떠나 도시 속에서 성장했다. 크게 보면, 성장은 선(善)과 악(惡)의 분열에서 선악(善惡)을 통합하는 과정일 것이다.
나는 부모님과 고향 마을 사람들을 긍정하는 데 수십 년이 걸렸다. 시민단체 활동과 인문학 공부였다. 가난한 사람들과 고통을 함께하면서, 나는 그들을 ‘나의 마음의 고향’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한때 배신했던 그들이 항상 내 가슴에 아프게 걸려 있다.
[고석근]
수필가
인문학 강사
한국산문 신인상
제6회 민들레문학상 수상.
이메일: ksk21ccc-@daum.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