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동의 아라비아반도 남서부에 위치한 예멘에서 무력 충돌이 다시 격화하면서 민간인들의 생존을 위협하는 인도주의 위기가 심각해지고 있다. 특히 남서부의 주요 도시 타이즈에서는 무력 충돌과 도로 통제 문제가 겹치면서 식량과 식수, 의약품을 공급받기 어려운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예멘은 북쪽으로 사우디아라비아, 동쪽으로 오만과 국경을 맞대고 있다. 서쪽에는 홍해가 있으며 남쪽으로는 아덴만과 아라비아해에 접해 있다. 유럽과 아시아를 연결하는 해상 운송로와 가까운 지리적 특성 때문에 국제적으로도 중요한 전략적 위치를 차지한다.
타이즈는 예멘 남서부에 자리한 주요 도시로, 수도 사나와 남부 항구도시 아덴을 연결하는 교통망과 가까운 곳에 있다. 이러한 지리적 위치는 타이즈가 예멘 내전 과정에서 군사적·물류적 요충지로 부각된 배경이기도 하다.
도시의 주요 진입로가 차단되면 외부에서 들어오는 식량과 연료, 의료품의 공급이 어려워진다. 주민들이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거나 긴급한 치료를 받기 위한 이동에도 제약이 생긴다. 현재 타이즈가 겪고 있는 위기는 이러한 지리적·군사적 특성이 민간인의 일상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사례다.
예멘 전쟁은 왜 시작됐을까?
예멘의 정치적 불안은 2011년 아랍의 봄 당시 장기간 집권했던 알리 압둘라 살레 대통령에 대한 반정부 시위가 확산하면서 본격화됐다. 정치적 전환 과정에서 살레 대통령은 2012년 권력을 내려놓았고, 압드라부 만수르 하디가 과도정부를 이끌게 됐다.
그러나 새로운 정부가 들어선 이후에도 지역 간 권력 배분과 경제적 불평등, 정치 개혁을 둘러싼 갈등은 해소되지 않았다. 연방제 개편과 자원 배분 등을 둘러싼 정치세력 간 이견도 커졌다.
이 과정에서 북부를 중심으로 세력을 확대해 온 후티 운동이 중앙정부에 대한 반발을 강화했다. 후티는 안사르 알라(Ansar Allah)라는 공식 명칭을 사용하는 정치·무장 세력이다.
2014년 9월 후티 세력은 수도 사나를 장악했다. 이후 정치적 대립이 무력 충돌로 확대됐으며, 2015년에는 사우디아라비아가 주도하는 연합군이 국제적으로 인정받던 하디 정부를 지원하기 위해 군사 개입에 나섰다. 이때부터 예멘의 갈등은 국내 정치세력 간 권력 다툼을 넘어 주변 국가들의 이해관계까지 얽힌 국제적 분쟁으로 확대됐다.
사우디아라비아는 후티 세력의 영향력 확대를 안보 위협으로 판단했고, 이란은 후티와 관계를 형성하며 지역 내 영향력을 확대해 왔다. 아랍에미리트 등 다른 국가들도 예멘 내 여러 정치·군사세력과 관계를 맺으면서 갈등 구도는 더욱 복잡해졌다.
2022년에는 유엔의 중재로 휴전이 성립하면서 대규모 교전이 한동안 줄어들었다. 하지만 휴전이 예멘의 정치적 분열과 권력 갈등을 근본적으로 해결한 것은 아니었다.
2026년 들어 지역별 긴장이 다시 높아졌고, 9월 이후 교전이 확대되면서 타이즈와 서부 해안 지역을 중심으로 주민들의 피해와 대규모 이주가 발생했다.
미국 의회조사국(CRS)의 2026년 7월 보고서 역시 예멘이 후티 세력과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정부 측 세력, 외부 국가들의 개입이 복합적으로 얽힌 분쟁 상태에 놓여 있다고 분석했다.
2026년 타이즈에서 벌어지는 일…도로 봉쇄가 일상을 멈춰 세웠다
이번 위기의 직접적인 원인은 무력 충돌이 격화하면서 타이즈로 연결되는 주요 도로의 통행이 제한되고 구호물자 운송이 어려워진 데 있다.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OCHA)은 2026년 10월 20일 타이즈의 상황과 관련해 도로 폐쇄와 치안 불안으로 연료를 비롯한 필수 물자의 반입이 차단되고 있다고 밝혔다. 식량과 연료 가격이 두 배 이상 상승했으며, 도시의 물 생산량은 절반 수준으로 감소했다는 설명도 내놓았다. 유엔 제네바 발표에서는 타이즈의 주요 접근로가 차단된 지 20일 이상 지났으며, 연료와 식량 등 필수 물자가 거의 들어오지 못하고 있다는 상황이 추가로 확인됐다.
세계식량계획(WFP)은 타이즈와 인근 지역에서 약 80만 명이 식량 지원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경고했다. 이 가운데 60만 명 이상은 정기적인 인도주의 지원에 의존하는 주민들이다.
11월 2일 유엔 측이 전한 상황도 심각하다. 약 100만 명이 거주하는 타이즈에서 물 생산량은 절반으로 줄었으며, 식품 가격은 최소 50% 상승했다. 병원에서는 연료와 의약품 부족 문제가 심화하고 있다.
물 공급 감소는 단순한 생활 불편에 그치지 않는다. 식수 확보가 어려워지면 위생 관리가 악화하고 감염병 발생 위험도 커질 수 있다. 특히 어린이와 노약자, 임산부처럼 외부 지원이 필요한 주민들은 더욱 취약한 상황에 놓인다.
식량 가격 상승 역시 저소득 가구에 직접적인 타격을 준다. 시장에 식품이 남아 있더라도 가격이 급격하게 오르면 주민들은 필요한 만큼 구매하기 어렵다. 공급 부족과 구매력 하락이 동시에 발생하는 것이다.
병원마저 위태롭다…임산부와 어린이에게 커지는 피해
타이즈의 위기는 의료 현장에서 더욱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병원 운영에 필요한 연료가 부족해지면 전력 공급과 의료장비 가동에 차질이 생긴다. 산소 공급과 응급수술, 중환자 치료 등 생명과 직결되는 의료 서비스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11월 3일 로이터통신이 전한 유엔인구기금(UNFPA)의 발표에 따르면 타이즈에서는 1만3,000명 이상의 임산부가 필수적인 의료 서비스를 제대로 이용하지 못하고 있다. 응급 산모·신생아 의료시설 27곳 가운데 정상적으로 운영되는 곳은 제한적이며, 5곳만 부분적으로 기능을 유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출산이 임박한 여성이나 조산 위험이 있는 신생아에게 의료 접근성은 생명과 직결된다. 도로가 막히고 병원 기능이 약화하면 평소에는 치료할 수 있었던 응급 상황도 심각한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 전쟁의 피해가 전투 현장에 있는 사람들에게만 한정되지 않는 이유다.
피란민 증가와 식량 위기…타이즈를 넘어 예멘 전역으로 확산
타이즈의 위기는 도시 내부에만 머물지 않는다. 교전 지역을 떠나는 주민들이 늘어나면서 주변 지역의 주거와 식량, 의료 서비스에도 부담이 커지고 있다. 유엔과 국제이주기구(IOM) 등의 발표에 따르면 2026년 들어 예멘에서는 분쟁 격화로 약 30만 명이 집을 떠난 것으로 집계됐다. 특히 타이즈와 라흐즈 등 남서부 지역이 주요 피란민 유입 지역으로 지목되고 있다.
피란민들은 거주지를 잃는 것뿐 아니라 생계수단과 교육 기회, 기본적인 의료 서비스까지 잃을 위험에 놓인다. 새로운 지역에 도착하더라도 기존 주민들이 이용하던 물과 식량, 병원 등 제한된 자원을 함께 사용해야 하므로 지역사회 전체의 부담이 커진다.
세계식량계획은 예멘 전역에서 1,800만 명 이상이 심각한 식량 불안정에 직면해 있다고 밝혔다. 어린이 영양실조 문제도 여전히 심각한 상황이다. 특히 타이즈와 서부 해안 지역에서 보급로가 차단되면 식량 지원을 기다리는 주민들에게 구호품을 전달하는 일 자체가 어려워진다. 구호기관이 식량과 의약품을 확보하고 있어도 현장까지 운송할 수 없다면 지원 효과는 제한될 수밖에 없다.
국제적십자 구호 트럭 4대 도착…그러나 해결해야 할 과제는 남았다
이런 상황에서 국제적십자위원회(ICRC)는 2026년 11월 4일 타이즈에 의료품을 실은 트럭 4대를 보냈다고 발표했다.
이번 지원에는 무력 충돌로 다친 환자들을 치료하는 데 필요한 수술용 물품과 필수 의료품이 포함됐다. 구호 물자는 타이즈의 병원에 전달됐으며, 오랜 기간 의료 자원 부족에 시달린 의료시설을 지원하기 위한 조치다.
ICRC는 최근 몇 주 동안 타이즈 주변의 여러 병원에도 긴급 의료품을 지원해 왔다고 밝혔다. 또한 환자의 거주 지역이나 분쟁 당사자와의 관계에 상관없이 필요한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안전하고 지속적인 구호 접근이 보장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구호품 전달은 고립된 의료시설에 필요한 물자를 공급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러나 의료품 4대 분량의 지원만으로 타이즈 전체의 식량과 식수, 연료 부족을 해결할 수는 없다. 무엇보다 상업용 물자와 인도주의 구호품이 지속적으로 들어올 수 있는 통행로가 확보돼야 한다. 일회성 구호보다 안정적인 공급 체계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전쟁에서 가장 먼저 보호받아야 할 사람은 민간인이다. 예멘 타이즈의 상황은 전쟁이 군사적 충돌만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총성이 멈추지 않는 지역에서는 주민들의 이동이 제한되고, 도로가 차단되면 식량과 물, 의약품을 구하는 일조차 어려워진다. 병원은 연료 부족으로 기능을 잃을 위험에 놓이고, 임산부와 어린이, 장애인과 노약자처럼 취약한 사람들은 더 큰 피해를 입는다.
국제인도법은 무력 충돌 상황에서도 민간인과 의료시설, 의료진을 보호해야 한다는 원칙을 규정하고 있다. 부상자와 환자에게 필요한 의료 지원이 이뤄져야 하며, 인도주의 구호 활동 역시 안전하게 수행될 수 있어야 한다.
타이즈의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교전 완화와 함께 민간인의 안전한 이동, 주요 도로의 개방, 지속적인 식량과 식수 공급, 병원 운영을 위한 연료와 의약품 지원이 병행돼야 한다. 국제사회의 관심과 지원도 일시적인 구호품 전달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주민들이 일상적인 생활을 회복할 수 있도록 안정적인 물자 공급과 의료체계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예멘 타이즈의 위기는 오랜 내전과 정치적 분열, 외부 세력의 개입, 2026년 교전 재확산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도로 봉쇄로 물자 공급이 끊기면서 주민들은 식량과 물, 의료 서비스마저 안정적으로 이용하기 어려워졌다.
국제적십자위원회의 의료품 지원은 중요한 첫걸음이지만,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서는 지속적인 교전 완화와 안전한 도로 개방, 민간인 보호가 필요하다. 전쟁의 승패보다 우선해야 할 가치는 민간인의 생명과 존엄성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