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주주의에서 선거는 국민이 국정의 방향을 선택하는 가장 중요한 절차다. 선거를 통해 선택된 정부는 국민으로부터 일정 기간 나라를 운영할 권한을 위임받는다. 다만 대통령의 임기는 5년이다. 국가는 그보다 훨씬 긴 시간을 이어간다. 오늘의 정부가 만든 정책과 제도는 다음 정부로, 또 다음 세대로 이어진다.
그래서 5년의 권력과 국가의 시간은 같을 수 없다. 국가의 법과 제도는 어느 한 정권이 만들어 소유하는 것이 아니다. 앞선 세대가 만들고 시대의 변화에 따라 고쳐 쓰면서 다음 세대에 물려주는 공동의 자산이다. 물론 제도는 변해야 한다. 시대가 달라지면 법도 바뀌고 조직도 바뀌어야 한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바꾸느냐 못지않게 어떤 속도와 절차로 바꾸느냐에 있을 것이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는 국가의 중요한 제도와 공간에 적지 않은 변화가 있었다. 오랫동안 존재해 온 검찰청이 폐지되고 수사와 기소를 분리하는 새로운 형사사법체계가 시작됐다. 대통령 집무실은 청와대에서 용산으로 옮겨갔다가 다시 청와대로 돌아왔다. 군의 장교 양성체계에서도 국군사관학교 창설을 둘러싼 논의가 진행되고 있으며, 방송·미디어 분야의 감독체계도 새롭게 바뀌었다. 각각의 변화에는 나름의 이유와 목적이 있다. 이를 하나하나 옳고 그르다고 평가하기보다, 이런 변화들을 바라보며 한 가지 질문을 던져보고 싶다. 5년의 권력을 위임받은 정부는 수십 년의 역사를 가진 국가의 제도를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가.
가장 큰 변화 가운데 하나는 검찰 제도다. 1948년 출범 이후 국가의 형사사법 체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온 검찰청은 2026년 10월 2일 폐지됐다. 그 자리를 공소청과 중대범죄수사청이 나누어 맡는 새로운 체계가 출범하면서, 수사와 기소의 기능도 제도적으로 분리됐다. 이러한 개편에는 수사와 기소 기능을 분리해 상호 견제할 수 있는 형사사법 체계를 만들겠다는 취지가 담겨 있다. 이제 중요한 것은 새로운 제도가 실제 현장에서 어떻게 작동하느냐일 것이다. 수사기관과 기소기관 사이의 협력은 원활하게 이루어질지, 복잡한 범죄에 대한 전문성은 어떻게 유지할지, 국민의 권익을 보호하는 장치는 충분한지도 살펴야 한다. 78년 동안 이어져 온 국가기관의 틀이 바뀐 만큼 그 결과 역시 단기간의 정치적 평가를 넘어 오랜 시간 동안 살펴볼 필요가 있다.
대통령 집무실의 변화도 돌아볼 일이다. 2022년 대통령 집무실은 청와대에서 용산으로 이전했고, 2025년 12월 다시 청와대로 돌아왔다. 실제로 2025년 12월 26일에는 용산 대통령실의 마지막 출근이 있었고, 12월 29일에는 청와대로의 출근이 공식 기록에 남아 있다. 대통령 집무실은 단순한 사무공간만은 아니다. 대통령이 국가를 대표해 업무를 수행하는 곳이며 국민에게는 국가권력의 상징적인 공간이기도 하다. 집무실의 위치가 바뀌면 경호와 보안, 행정시설, 주변 교통과 주요 국가시설의 운영에도 변화가 뒤따른다. 물론 대통령 집무실의 위치는 국정철학과 업무환경 등을 고려해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이다. 다만 대통령의 업무 방식과 국정철학은 5년마다 달라질 수 있지만, 국가를 대표하는 공간은 그보다 긴 시간의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하지 않을까. 특히 국가의 상징과 행정의 중심이 되는 공간이라면 이전과 복귀를 둘러싼 찬반을 넘어 장기적인 국가 운영의 관점에서 충분히 검토하고 국민에게 설명하는 과정이 중요할 것이다.
군의 장교 양성체계에서도 변화의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국방부는 2026년 학령인구 감소와 안보 환경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육·해·공군사관학교를 통합한 국군사관학교 창설 기본계획을 발표했다. 이 과정에서 각 군의 정체성과 전문성을 유지하면서 미래 전장에 필요한 인재를 양성하는 방안이 함께 논의되고 있다. 군의 교육체계를 하나로 묶거나 새로운 방식으로 개편하는 데에는 합동성과 교육 효율성을 높이려는 이유가 있을 수 있다. 반면 육·해·공군이 오랜 시간 축적해 온 서로 다른 전문성과 전통을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도 중요한 문제다. 통합이냐, 존치냐의 답을 미리 정하기보다, 국가안보라는 긴 시간의 관점에서 충분한 검토와 논의를 거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국방은 정권의 임기보다 긴 시간표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방송과 미디어 분야에서도 제도의 변화가 이어지고 있다. 방송통신위원회가 폐지되고 대통령 소속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가 신설되면서 관련 감독체계가 달라졌고, 방송의 공공성, 공영방송의 운영, 정치적 독립성을 둘러싼 논의도 계속되고 있다. 방송은 일반적인 행정기관과는 조금 다른 성격을 갖는다. 국민에게 정보를 전달하고 사회의 다양한 의견이 만나는 공공의 장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방송 제도를 정비할 때는 어느 정권에서든 적용될 수 있는 원칙을 만드는 일이 중요하다. 오늘의 여당이 내일의 야당이 될 수 있고, 오늘의 야당이 언젠가는 정부를 운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어느 한쪽에 유리한 제도가 아니라 정권이 바뀌어도 국민이 신뢰할 수 있는 제도일 것이다.
위와 같은 사례는 서로 성격이 다르다. 검찰은 형사사법제도의 문제이고, 대통령 집무실은 국가 운영의 공간과 상징에 관한 문제다. 사관학교는 국방의 미래와 관련되고, 방송·미디어는 국민의 알 권리와 공공성에 관한 문제다. 그러나 이 네 가지를 함께 놓고 보면 정권과 국가는 다르다는 사실이 보인다. 대통령에게 5년은 국정을 추진하기에 짧지 않은 시간일 수 있다. 그러나 국가의 관점에서 5년은 긴 역사 속의 한 구간일 뿐이다. 오늘 결정한 제도가 10년 뒤에도 필요한지, 다음 정부에서도 제대로 작동할 수 있는지, 다음 세대의 국민에게 어떤 영향을 남길지를 함께 생각해야 한다.
그렇다고 제도를 바꾸지 말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오히려 시대가 바뀌면 제도도 바뀌어야 한다. 다만 오래된 제도일수록 그 안에는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하는 경험과 이유가 축적되어 있을 수 있다. 겉으로는 낡아 보이는 제도에도 오랜 시행착오를 거쳐 만들어진 장치가 들어 있을 수 있다. 그래서 제도를 바꿀 때는 새로운 것의 장점뿐 아니라 기존 제도가 가지고 있던 장점도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다. 결국 개혁의 속도만이 문제는 아니다. 얼마나 많은 의견을 듣고, 얼마나 깊이 검토하며, 바뀐 제도가 오래 안정적으로 작동하도록 만드는가가 더 중요할 수 있다.
5년의 권력은 국민에게 위임받은 권력이다. 그러므로 그 권력은 자신의 임기만 바라보기보다 그 이후를 바라볼 책임도 함께 갖는다. 국가의 제도는 한 정권의 작품이 아니다. 앞선 세대가 남긴 것을 현재의 세대가 고쳐 쓰고, 다시 다음 세대에 물려주는 것이다. 그래서 국가의 오래된 제도를 고칠 때는 때로 망치보다 붓이, 허무는 일보다 다듬는 일이 어울릴 수 있다. 한꺼번에 허물기보다 필요한 곳을 찾아 조심스럽게 고치고, 새로운 것과 오래된 것이 조화를 이루도록 다듬는 것이다.
5년의 권력은 지나간다. 그러나 국가는 계속되고, 제도는 남는다. 그것을 어떻게 남길 것인가. 어쩌면 그것이 5년의 권력을 맡은 사람들에게 주어진 또 하나의 책임일 것이다.
[문용대]
한국수필 수필문학상 수상
문학고을 소설문학상 수상
지필문학 창립10주년기념 수필부문 대상 수상
코스미안뉴스, 브레이크뉴스 고정 필진
한국예인문학, 지필문학, 대한문학, 각종 문학카페 활동
대한문학 부회장, 지필문학 이사
수필집 ‘날개 작은 새도 높이 날 수 있다’, ‘영원을 향한 선택’
이메일 : myd1800@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