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은평구 진관동엔 내시와 궁녀의 은퇴 촌이 있었다
진관 내동은 궁녀와 내시의 은퇴 촌이고 진관 외동은 이들의 무덤 군이 있다. 은평구 구파발역 앞 이말산은 한양 제일의 명당 터로 내시(內侍)와 궁녀(宮女)의 무덤군이 있었다. 이말이란 한성에서 2십 리 밖에 떨어져 있는 마을이란 뜻이다. 이말산에 금성당이란 조선 최대의 당집인 금성당과 당상관급 이상의 내시와 궁녀가 묻힌 무덤군이었다. 이곳에 숙빈최씨의 부친인 내시 최효원 묘역과 상궁 옥구 임씨 와 3명의 상궁 묘가 명당을 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진관동엔 퇴임한 궁녀와 내시가 집단으로 살았던 내시 촌이 있었다.
궁녀(宮女)와 내시(內侍)는 임금의 편전과 왕실 가족의 은밀한 사생활을 하루 24시간을 묵묵히 돌보는 비서 일을 했던 사람들이다. 그러나 이들 궁녀와 내시는 국가 최고 권력의 핵심부에서 엄격한 관료적 위계질서를 갖추고 국정 운영의 한 축을 담당한 전문 기술 관료 집단이었다. 왕의 여자였던 궁녀는 퇴임 후에도 가정을 가질 수 없어서 비혼으로 살거나 절에서 비구니로 쓸쓸한 여생을 보냈지만 내시는 가정을 꾸릴 수 있었다. 은퇴 후 양자 상속이란 제도로 가정을 꾸려 대를 이어 갈 수 있었다.
제2 궁궐인 내시 촌과 내시 무덤의 현장
은평구 신사동과 갈현동은 도성 밖에 둔 가장 큰 공동묘지였다. 그리고 진관동은 내시와 궁녀의 무덤군이 있었다. 조선왕조 500년간 내시는 3,000여 명 궁녀는 4,000여 명이 있었는데 은퇴 후 이곳 진관동 내시 촌에서 살다가 죽은 내시 무덤이 1,700여 분, 궁녀의 무덤이 1,400여 분이 있었다. 이곳에 살던 궁녀와 내시는 모두 재력이 탄탄했다.
불광동에서 진관동에 이르는 북한산 둘레길 8구간을 가다가 보면 내시 촌과 무덤군을 볼 수 있다. 이말산 건너 향로봉 자락에 세종의 6남 의연군 이영의 묘역이 있고 주변이 바로 현대식 한옥촌이 있는 곳이다. 진관 내동엔 퇴역 궁녀와 내시들이 300여 가구 촌락을 이루고 살았다. 그리고 북한산 둘레길 9구간의 산천사와 백악사 가는 계곡은 내시와 궁녀들의 무덤이 있는 진관 외동이다. 이렇게 진관동은 내시촌과 무덤군이 있는 제2의 궁궐이었다.
내시 김시봉과 궁녀 임옥선의 슬픈 사랑 이야기
진관 내동은 내시 촌이고 진관 외동은 내시의 무덤군인데 노고산 일대, 장흥과 일영의 들판은 퇴임 내시 궁녀들이 토지를 가꾸며 살았던 곳이다. 즉 내시 양자 후손들이 촌락을 이루어 농사를 짓고 살았다. 내시와 궁녀는 성의 사각지대에 사는 금기된 특인이었다. 아무리 금기된 절제 속에 산 궁녀와 내시지만 인간이란 생물적인 섹스의 환상을 외면할 수 없었다. 내시 촌에서 궁에서 억제된 감정이 깨고 살았던 연인이 있었다.
퇴임 상궁 궁녀 임선옥과 상선 내시 김시봉의 사랑 이야기다. 진관동 내시 촌으로 퇴임한 내시들과 궁녀들이 속속히 들어왔다. 다들 50을 넘긴 노령이었다. 갓 퇴임한 궁녀 임선옥이 백화사에 입성하였다. 그녀는 평생 번 돈을 절에 내놓고 오직 부처님을 받들고 염불하며 비구니로 제2 인생을 시작하였다. 여느 날 궁에서 같이 일해 잘 아는 내시 김시봉이 그녀를 내시 촌으로 초청하였다. 내시 촌엔 가정을 이룬 부부들이 살고 있었는데 김시봉은 혼자 살고 있었다. 그는 내시촌을 방문한 임선옥에게 따뜻한 다과를 대접하였다. 궁에서 잘 아는 사이기에 편하게 대할 수 있었다. 그렇게 김시봉은 그녀가 기거하는 백화사로 자주 놀러 가면서 더 친해졌다. 어느 날 김시봉이 그녀의 마음을 떠봤다.
“옥선 상궁을 사랑합니다.” 그가 고백했다.
“저도 상선 시봉씨를 좋아합니다.”
“우리 사랑하니까 결혼해서 같이 삽시다.”
“결혼? 시봉씬 내시잖아요.” 옥선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육체적인 사랑을 떠나 정신적인 사랑을 할수 있잖아요.”
“정신적인 사랑을...., 좋아요. 우리 결혼해요.” 그녀는 뜻밖의 동의를 하였다.
마침내 그들은 부부가 되어 집시촌에서 같이 살게 되었다. 아무리 정신적인 사랑을 한다고 해도 인간에게 욕정이 있었다. 50대의 임선옥은 성생활이 가능했지만 김시봉은 내시라서 성기능이 마비된 상태였다. 내시는 고환을 깐 남자라서 생식 호르몬이 없어서 생식은 못 하지만 오직 배설 기능만 가진 남자였다.
선옥은 말은 못 하지만 남편과 잠자릴 같이 하면서 본능적인 욕정에 사로잡혀 있었다. 견딜 수 없는 욕정에 그녀는 남편을 자극하였다. 그런데 남편의 성기는 작동 불능이었다. 김기봉 역시 불타는 욕정을 가눌 수 없었지만, 고자라서 성교를 할 수가 없었다. 밤마다 서로가 불타는 욕정에 사로잡혔으나 발정을 못 해 몸부림을 치고 있었다.
“접합이 안 되면 다른 방법으로 시도해봐요.” 아내의 요구였다.
부부는 다른 방법으로 욕정을 발산하였다. 그런데 이상한 현상이 일어났다. 발기가 회복되어 부부생활을 할 수 있었다. 뒤늦게 발산하는 사랑의 열기는 여니 부부처럼 정을 나눌 수 있었다. 그런데 나이 50에 그녀는 임신했다.
“여보 내가 임신을 했어요. 당신의 기능이 회복되었나 봐요.”
“글쎄요. 난 내십니다. 정자가 없어서 아일 가질 수 없다고요.”
“아닙니다. 당신의 아이가 맞아요.”
사실 남편은 내시지만 고환 기능이 마비되어 생식 기능이 없었다. 그는 자신의 기능이 회복된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였다. 그러나 씨를 생산 못 하는 고자였다. 배가 불러오자 그녀는 남편의 성기능이 회복된 것을 기뻐했다. 그러나 김시봉은 아내를 의심하였다. 자신은 씨를 넣을 수 없는데 아내의 임신은 불륜으로 얻은 것으로 생각하였다. 아내의 배가 만삭이 되었다. 같이 사는 내시촌 이웃들은 소곤거리기 시작했다. 그녀는 남편의 기능이 회복된 것을 기뻐하였지만 김시봉은 고민하기 시작했다.
“미안해요. 이것이 당신과의 끝인가 봅니다.”
그는 아내의 불륜을 견딜 수 없었다. 그보다는 내시가 아일 가졌다는 소문을 감당할 수가 없었다. 어느 날 그는 진관사 계곡 폭포수로 올라가서 절벽 아래로 떨어져 자살을 해버렸다.
“왜 죽어요. 난 외도를 하지 않았어요. 이 아이는 당신의 아입니다.”
그녀는 남편의 죽음을 슬퍼하였다. 그리고 마침내 임성옥은 김시봉의 아이를 낳았다. 남편의 시신을 내시 무덤 촌에 묻고 아이를 데리고 노고산 아래 장흥마을로 갔다. 그곳에서 아이를 키우면서 농사를 짓고 살았다. 그곳 장흥에는 양자로 들인 다른 내시들의 자식들이 많이 살고 있었다. 그녀는 남편의 남겨준 많은 재산으로 토지를 사서 큰 부자가 되었다. 그녀는 그렇게 모은 모든 재산을 백화사에 공덕하고 그 아들은 진관동을 떠나버렸다.
[김용필]
KBS 교육방송극작가
한국소설가협회 감사
한국문인협회 이사
한국문인협회 마포지부 회장
문공부 우수도서선정(화엄경)
한국소설작가상(대하소설-연해주 전5권)
이메일 :danmoon@hanmail.net




